십년쯤 전에 그때도 지금의 나와 다르지 않아서 심란해지면 혼자 큰 화방을 돌면서 구경하곤 했다.
내 변변찮은 주변머리로는 혼자 갈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는데 가장 좋았던 곳이 서점이나 화방이었다. 둘이 함께 있는 곳이라면 정말....
그날도 시내의 큰 화방을 돌면서 종이도 만져보고 물감이나 펜들을 손에 한번씩 잡아보며 정신을 화방용품에 내어주곤했다. 그러다 계산대 옆에 지우개 한 상자를 보았다.
그냥 보기에도 한입 물어보게 생긴 뽀얀 지우개.
눈으로만 봐도 지우개의 표면 감촉이 전해지게 생겼다. 그날 지우개를 손에 잡아보던 순간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날 그 화방에서 포장해준 그대로 지우개를 침대 머리맡 작은 상자에 두었다.
그리고 한번씩 생각나면 꺼내어 보고 지우개의 형태에 감탄하곤 했다.
그날 이후로 그 지우개는 점차 화방에서 찾기 어려웠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고 어느날 문득 그 지우개를 화방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같은 모델이 아니었는데 딱 보고도 같은 회사의 지우개라는 것을 알아차릴수 있었다.
밀란. 그날부터 화방을 가면 같은 지우개를 찾아보는 것이 정해진 코스가 되었다.
지우개를 향한 무서운 집착. 정확하자면 밀란을 향한 무서운 집착은 시작되었다.
허허. 보고만 있어도 좋고, 잘 지워지는지 아닌지는 상상할수 없을 정도로 그냥 두고 바라만 보는 지우개
그렇게 모시는 지우개면서도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손에 쥐어 주고싶은 마음이 드는 지우개.
어느날부터 그 지우개에 보노를 그렸다. 더 좋아하고 싶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