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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랍속 상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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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다닐때 화실을 지하철 타고 다녔었다.
그때 학생용 정액권으로 다녔는데 마지막 요금이 남았을때는 기계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 표를 가질수가 없으니 늘 요금이 다쓸무렵이면 긴장하고 기계에 뺏기지 않기 위해서 챙겼었다.
그때 다산사람처럼 두고두고 그 시간들을 떠올릴꺼라고 생각하곤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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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하고, 자넨 심각한 미소를 띠고.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고,
자넨 내가 말하는 대로 내버려두고,
그러다가 저녁이 오면,
우린 석양 무렵을 가을에 닮게 하는 황색 햇빛 속을 걷는다.
그리고 계류를 따라간다.
목쉰 비둘기 한 마리가 청록색 포플러나무 속에서 부드럽게 운다.
나는 계속 주절대고, 자넨 계속 미소만 띠고, 행복은 침묵하는 것.
저기 여름이 지는 어스름에 잠긴 도로가 보인다.
이제 우린 볼품없는 포도 위로 집으로 돌아간다.
저기 푸르스름한 연기가 새어나오는
어두운 문간들을 장식하고 있는 분꽃들 옆에 그늘이 무릎 꿇고 있다.
자네가 죽었다고 변한 건 없지.
자네가 좋아하고 자네가 거기서 살고 괴로워하고 노래하던 그늘,
그걸 떠나는 건 우리이고, 간직하는 건 자넬세.
자네의 빛이 그 어둠에서 태어났고,
밀을 키워 주시는 신을 느끼며
검은 메꽃나무들 밑에서 가축몰이 개들이 짖어대는 이 아름다운 여름 저녁,
그 어둠이 우릴 무릎 꿇게 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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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시스 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