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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밑구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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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화제를 바꾸려는 듯이 말한다.
"비가 몇 달씩 기관총처럼 양철 지붕을 때리지. 그러면 늪에서 김이 오르네. 비가 아주 따끈하거든. 침대 시트, 속옷, 책, 양철 깡통 속의 담배, 빵, 모든것이 눅눅해지지. 끈끈하고 끈적거려. 자네는 집에 앉아있고, 말레이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네. 자네가 데려온 여자는 방 한구석에 꼼짝 않고 앉아서 자네를 바라보지. 그러다가 신경에 거슬려서 방에서 나가라고 말하네. 하지만 그래 보았자 소용없어. 그들이 어딘가 다른 방에 앉아서 벽을 뚫고 자네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안 봐도 알 수 있네. 그들은 전세계에서 가장 순종적인 짐승, 말없는 동물, 티베트의 개들처럼 커다란 갈색 눈을 가지고 있어. 그렇게 빛나는 고요한 눈으로 사람을 바라본다네. 어디를 가든지 이 눈빛이 불길한 섬광처럼 뒤쫓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자네가 소리 지르면 그들은 미소를 짓네. 때리면, 미소지으며 자네를 바라보지. 쫓아내면, 현관 문턱에 앉아 집안을 들여다본다네. 다시 불러들일 수밖에 없어. 그들은 쉬지 않고 아기를 낳아.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본인은 더 말을 안 하지. 마치 자네 옆의 한 인간 안에 짐승, 살인자, 사제, 마법사 그리고 광신자가 다 들어 있는 것 같아.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피곤해지네. 아무리 강한 사람도 녹초로 만들어버릴 정도로 그 시선이 강하기 때문일세. 마치 계속 손으로 쓰다듬는 것 같아. 나중에는 미쳐버릴 것만 같지. 그러나 그것에도 무감각해지네. 비가 내리고, 방 안에 앉아 화주, 많은 화주를 마시며 달콤한 담배를 피우지. 간혹 누군가 찾아오면, 별로 말없이 같이 화주를 마시고 달콤한 담배를 피우네. 책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어찌된 일인지 책 속에도 비가 내려.
말 뜻 그대로는 아니지만 실제로 비가 내리네.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어. 계속 빗소리만 들려오지. 피아노를 치려들면, 비가 옆에 앉아 같이 피아노를 친다네. 그리고 나면 건기가 오지. 밝은 햇살 속에서 김이 피어올라. 사람들은 빨리 늙는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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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네 영혼의 밑바닥에는 갈등, 자네가 아닌 다른 사람이고 싶은 동경이 숨어있었어. 인간에게 그것보다 더한 시련은 없네. 현재의 자기와는 달라지고 싶은 동경, 그것보다 더 고통스럽게 인간의 심장을 불태우는 동경은 없지.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과 세상에서 차지하는 것하고 타협할 때에만 삶을 견딜수 있기 때문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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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읽다가 옮겨적다가 읽다가 옮겨적다가....한다.